소설『side 죠』(完)

001. 죠 시점

ーNIHANー 2022. 1. 20. 12:46

키미가시네ー다수결 데스게임ー side 죠

원작・감수・일러스트 난키다이

저자 데시가와라 아네모

출판사 카도카와

 

번역:NIHAN


"그럼 다수결로 정할까?"

"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내가 멍때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북적거리는 길 한복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잡담이나 얘기하는 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노을이 길 위의 모든 걸 주황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왜 그래, 죠?"

눈앞의 여자애는 멍해져 있는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다.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청초함과 발랄함을 둘 다 가지고 있는 귀여운 애다.

거기서 나는 정신을 차렸다.

…………첫 데이트라서 너무 긴장했던 걸까.

오늘은 방과 후에 여자친구인 료코랑 데이트하자고 약속했었다.

시내로 나가서 윈도우 쇼핑을 하고 이제 뭘 먹을지 정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괜찮아? 너무 오래 돌아다녀서 지친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어 그니까… 케밥이랑 크레이프 중에 하나 고르는 거였지?"

"응, 죠는 둘 다 좋다고 하니까"

둘이서 다수결 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료코는 조금 엉뚱한 면도 있었다. 그런 순수한 점에 끌린 거지만.

다수결은 곧바로 결정이 났고, 같이 케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진짜 맛있겠다! 모처럼이니까 사라한테 사진 찍어서 보내줘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료코는 폰을 꺼내 케밥을 들고 있는 우리를 찍었다.

사라, 나랑 료코의 친구로 이름은 치도인 사라라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로 처음 만났었고 나랑 료코를 이어준 것도 사라였다.

무사처럼 단정하고 늠름해 보이는 사라랑은 다르게 나는 바보 같아서 완전 정반대 같아 보였지만

서로 대화해보니 신기하게 말도 잘 통했고, 그 이후부터는 어쩌다 보니 같이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사라랑 내가 소중히 하는 게 닮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말로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나랑 사라는 인간의 선한 면이라는 걸 믿고있었다.

누구든지 사실은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싶고 곤란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돕고 싶지만 공부나 일만으로도 벅차서 그걸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는 그걸 실천하자.

입 밖으로 꺼내면 촌스러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둘 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이성이라는 벽도 넘어 친구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료코는 그런 사라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기대에 찬 눈으로 케밥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도 따라서 한 입 먹고 동시에 그 맛에 감탄한다.

"자기도 먹고 싶다고 하지 않을까?"

"아하하, 사라는 나처럼 먹는데 욕심내지는 않거든? 그래도 좀 의외네, 아직 안 읽었어. 다른 일 하고있는 건가?"

그런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대화는 사라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료코는 고등학교 입학 후 한 번도 사라랑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었다.

그에 비해 나는 2년 연속 사라랑 같은 반이었고, 그 사실에 료코는 약간 삐져있었다.

그렇게 사라에 대한 얘기로 대화가 이어지고, 우리는 첫 데이트의 긴장감도 잊고 신나게 수다를 떤다.

높은 건물들의 틈 사이로 노을이 지고 있는 걸 보면서 문득 료코가 입을 열었다.

"그 사라에 대한 건데, 죠한테 얘기해두고 싶은 게 있거든"

무슨 얘기? 그렇게 물으니 료코는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사라 있잖아, 주변에서 듬직하고 강한 애라는 말도 듣고 신뢰도 받고 있어.

 사람들이 주는 평가 같은 건 자기 스스로 내리는 평가에도 쉽게 영향을 줘버리니까 사라도 오해하고 있을 거야.

 자기는 강한 사람이라고. 그러니까 괜찮다고"

료코는 사라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래도 있지, 사라도 평범한 여자애야. 강해 보여도 실은 약하거든.

 그러니까 친구인 우리들이 그런 부분은 잘 봐주자. 사라가 무리하지 않게. 알겠지?"

바람이 콧등을 스친다.

내 옆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노을에 비치는 그 모습이 정말 예뻐서, 항상 그 순간만큼은 순식간에 지나가서…….

료코의 말을 마음 깊이 이해한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약속도 했다.

사라를 울리는 녀석은 우리가 울린다! 라고.

.

.

.

해가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우리는 역 앞에서 헤어졌다.

료코는 개찰구로 향하면서도 천진난만하게 손을 흔들어줬다.

료코를 배웅하고, 사라에게 첫 데이트의 보고를 위해 톡을 보낸다.

헤어지기 전 료코가 조금 신경 쓰고 있었지만, 그 성실한 사라가 아직 메세지를 확인 안 한 것 같았다.

"사라…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겠지"

오늘 데이트로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료코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사라는 료코한테조차 자기가 스토커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스토커로 힘들어하고 있는 것도 내 착각일지도 몰라.

하지만 료코가 말했던 것처럼 사라는 뭐든지 혼자 끌어안고 속으로 앓는다. 

할 수만 있다면 친구로서 그걸 같이 짊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역에서 기다려봤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한테서 연락은 없었다.

말풍선 옆의 1도 사라지지 않는다.

설마 아직도 선생님 심부름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면 다행이지만…

전화를 걸어볼까 고민했지만 선생님이랑 같이 있는 거면 잔소리 들을 수도 있을 거야.

신경 쓰인 나는 학교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해 그 쪽 방향 전철에 올랐다.

.

.

.

저녁은 금방 지나 밤이 되었다.

이상하게 불안해져서 학교와 가장 가까운 역에서 내린 다음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아무래도 그건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교문에 도착한 직후, 사라가 학교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사라!"

"꺅!"

말을 거니 평소엔 내지 않는 비명을 내질렀다.

곁눈으로 나를 확인하고는 안심한 듯이 한숨을 내쉰다.

"뭐야, 죠였네. 놀랐잖아… 근데 왜 너가 여기있어?"

"미안미안, 조금 걱… 데이트한 거 자랑하고 싶어서 찾아다니고 있었지"

걱정되서 찾으러 왔다, 를 입 밖으로 내려다 그대로 삼켰다.

다행히도 사라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데이트? 아아, 오늘 료코랑 첫 데이트하는 날이었지"

"얘기 좀 들어줬음 해서 연락했는데 답장도 없고"

"아, 그랬어? 미안. 폰 확인하는 걸 잊고 있었네"

"그렇게 성실한 니가 웬일이래? 것보다 모처럼이니까 집까지 데려다줄게.

  밤길은 위험하기도 하고 내 데이트 얘기도 제대로 들어줘야되니까"

사라네 집은 걸어서 등교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

말을 꺼낸 나는 걸음을 재촉했지만, 사라는 따라오지 않는다.

뒤돌아보니 사라는 어딘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네, 모처럼이니까 부탁할까"

그렇게 우리는 사라네 집까지 돌아가는 밤길을 걷기 시작했다.

료코랑 보낸 첫 데이트에서 케밥을 먹었다던가, 전에 셋이서 갔던 카페 또 가볼까 같은 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왜 아까 연락이 끊겼었는지에 대한 얘기도 했다.

"아아, 선생님 심부름 좀 했거든.

 그냥… 생각했던 것보다 지쳐있던 것 같아서 심부름 끝나고 교실에서 잠들어버렸어"

사라는 요즘 들어 계속 표정이 어둡다.

거기다 잠도 잘 못 자고 있는 건지 수업 중에 꾸벅꾸벅 조는 일도 많아졌다.

이유를 물어도 대충 얼버무리면서 넘겨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사라가 폰으로 스토커 피해에 대한 걸 검색하고 있던 걸 무심코 보고 말았다.

내 착각이나 기분 탓이었던 거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너 요즘 불안해서 못 자는 거지?"

"어?"

사라의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나는 그날, 염치없는 행동이었는지도 모르지만 한 발 내디뎠다.

"스토커 때문에…"

밤바람이 우리 둘 사이를 스쳐 간다. 사라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낮에는 물을 수 없었던 진지한 얘기도, 지금이라면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서 뭔갈 생각하더니 사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눈치채고 있었던 건가. 그래서 걱정돼서 학교까지 온거야…?"

그렇게 사라랑 마주보고 있는데 주변 시야로 뭔가 들어왔다.

가로등 불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밑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뭐야?

그 광경에 눈을 의심했다.

가로등 밑에는 더없이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서 있었다.

온통 시커멓고 긴 머리에, 눈만이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틀림없이 사라가 힘들어하고 있던 원흉. 스토커였다.

이쪽에 눈을 두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건지, 그놈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죠! 뛰어!"

사라는 내 손목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끌려 내 다리도 움직였다.

"사라! 너 저런 거 한테 미행당하고 있었던 거야!?"

"마주친 건 오늘이 처음이야. 계속 기척은 느끼고 있었는데"

우리는 인적없는 밤길을 무작정 달린다.

사라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검도로 체력을 단련해왔을 사라조차 헉헉대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문득 신경 쓰여서 사라를 바라봤다.

그 얼굴에는 여유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고, 잔뜩 긴장해있었다. 무서워하고 있다.

"괘, 괜찮아.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 안전할 거야"

"죠…"

내가 말을 거니 항상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사라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쭈그려 앉은 채 말했다.

"무서워… 무서워, 죠. 나 이러다 언젠가 살해당하는 거 아니야…?"

좀처럼 보이지 않는 약한 모습에 그동안 사라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가 느껴졌다.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런 짓 하게 둘까 보냐. 언제든 날 부르라고!"

그러자 사라는 불안해 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런 사라와 반대로 나는 웃어 보였다.

"그니까 괜찮아. 걱정마. 자, 부모님 기다리시겠다"

"어, 어어… 그, 그렇네… 나한텐 너가 있었지. 고마워, 죠"

그걸로 어떻게 잘 위험을 넘겼다고 생각했다.

스토커가 사라 앞에 나타났고, 그래도 잘 도망쳐서…

 

하지만 이변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사라네 집이 이상했다. 밤이 깊었는데도 불이 다 꺼져있었다.

"혹시 오늘 부모님 외출하셨어?"

"아니,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죠, 미안한데 집 안까지만 같이 들어가줄래?"

사라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문은 잠겨있지도 않았고, 실내는 어둡고 조용했다.

현관에는 신발이 몇 켤레 있었지만 나는 어떤 게 외출용인지 구분할 방도가 없었다.

사라한테 물어보려 했지만 사라는 이미 "엄마! 아빠!"하고 목소리를 높여 거실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뒤따라갔다. 사라는 거실 불을 켰고, 거기서 우리들은 할 말을 잃었다.

거실에는 사라의 어머니가 쓰러져있었다.

"어……? 어, 엄마!? 엄마!! 정신 차려!"

항상 냉정했던 사라가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해한다.

자기 엄마가 눈앞에 쓰러져있는 거야. 당연히 이렇게 되겠지.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니 칼 같은 게 떨어져 있거나 피를 흘리고 있는 그런 최악의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살펴보니 다행히 호흡은 있었다.

"사라, 괜찮아. 기절하신 것 뿐이야"

"어…… 그래도, 왜"

"모르겠어. 어쨌든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경찰 부르자"

"아, 알겠어"

나는 그 자리에서 폰을 꺼냈다. 경찰에 전화하려던 찰나, 사라가 생각났다는 듯이 벌떡 일어났다.

"마, 맞아 아빠! 아빠는… 무사하려나, 나 조금 찾아보고 올게"

"어, 야 사라?"

사라는 비틀거리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은 되었지만, 마침 전화가 연결됐다.

"네, 경찰입니다. 사고입니까, 사건입니까"

"저, 어 그러니까…… 사, 사건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친구랑 집에…"

직후, 2층에서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설마 누가 있던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던 거야, 하고 스스로를 탓했다.

저쪽에서도 비명을 들은 건지, 경찰은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놀란 듯 물어온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한 후, 나는 서둘러 2층으로 향했다.

숨을 삼켰다.

열려있는 문의 건너편에는… 사라가 아닌 누군가가… 서있었다.

거기서 내 의식은 뚝 하고 끊겼다.

.

.

.

처음 보는 회색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의식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한다.

어? 나… 뭐 하고 있었지?

내 방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다.

혼란스러워하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곧이어 그걸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몸이 침대에 묶여있었다.

"어……"

이상한 상황에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는 검은 띠 같은 걸로 온몸이 묶여있었다.

당황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나랑 똑같이 묶여있는 사라가 있었다.

"……죠"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것 같다.

그건 반에서 항상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던 사라도 마찬가지였다.

"사라. 여기, 어디야?"

"모르겠어. 애초에 왜 이렇게 돼 있는 거야?"

우리는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해보려고 했다.

뭔가를 떠올린 것 같이 사라는 "아" 하고 소리를 냈다.

"맞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엄마를 도와야 하는데! 제길, 이거 어떻게 안 풀리나"

그 말에 나도 정신을 잃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냈다.

스토커. 불이 꺼져있던 사라네 집. 쓰러져있던 사라의 어머니. 방에 서 있던 누군가.

"우, 우리 설마… 스토커한테 납치당한 건가?"

"모르겠어. 그치만"

그렇게 대화하고 있던 도중, 어느샌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기계음이 울렸다.

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을 확인했으므로, 음성안내를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최초의 시련을 시작합니다.

이 방의 어딘가에 있는 열쇠를 찾아, 스스로를 구속하고 있는 구속구를 해제해주십시오.

만약 제한 시간 5분 안에 해제하지 못했을 경우, 침대의 장치가 작동해 몸을 꺾어버릴 것입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다.

하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음성은 계속해서 말한다.

 

《더불어, 열쇠는 한 개밖에 없으니 어느 쪽이 사용할지 결정해주십시오.

그럼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5, 4, 3, 2, 1, 시작》

 

폰 화면에 시선을 두니 타이머가 흘러가고 있었다.

최초의 시련? 열쇠? 제한 시간 5분? 거기다...

"꺾어버린다니… 이게 뭔 소리야?"

나는 어떻게 해서든 웃어 보이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웃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지금 납치당한 거다.

장난이나 몰래카메라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 없는 일어나고 있다.

밤길에 갑자기 나타난 긴 머리의 스토커도 그렇고, 사라의 어머니는 정말로 기절해있었다.

그 어디에도, 웃으려고 해봐도 웃을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죠. 지금 이 상황, 어떻게 생각해?"

정신을 차리니 사라는 점차 냉정을 되찾고 있었다.

"꿈이면 깼으면 좋겠는데. 꿈, 아니지 이거?"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 같아. 일단 열쇠라는 걸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사라랑 대화하고 있으니 각자 오른손의 구속이 풀렸다.

우리가 깨어난 걸 알아챈 것 같은 방금 전의 음성안내도 신경 쓰였다.

누군가가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건가?

이 상황을 웃으면서 보고 있는 놈들이 있다는 거야?

분했지만 일단은 열쇠를 찾는 게 먼저였다.

오른손을 최대한 뻗어 필사적으로 찾아본다.

열쇠는 생각보다 간단히 찾을 수 있었다.

내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손바닥 정도 크기의 오래되어 보이는 열쇠가 들어있었다.

"뭐야 쉽네, 사라! 열쇠 여기 있어!"

"그, 그래…? 하지만, 죠. 중요한 게 있어"

"중요한 거?"

"방금 음성안내 내용을 떠올려봐. 열쇠는 한 개밖에 없다고 했잖아. 어느 쪽이 쓸지 결정하라고 했었고"

"어…… 설마"

둘 중 하나만 열쇠를 쓸 수 있다는 거야?

그럼 내가 써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라가… 사라 몸이 꺾여버린다는 거야?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다.

마치 이 상황은, 둘 중 하나의 목숨을 선택하라고 하는 것 같다.

웃기지 마!! 목숨은 게임 같은 게 아니라고…!!

분개해서 소리치고 싶은데 몸이 떨려온다.

누구든지 그렇게 되겠지만, 지금까지 목숨의 가치를 저울질한 적은 없었다.

쟤보다 얘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던가, 그런 걸 생각해 본 적 같은 건 없어.

"죠"

내가 생각할 힘을 잃어버리려고 할 때, 사라가 말을 걸어왔다.

사라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이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네가 써"

무심코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포기한 거야? 그러면…!"

"아니, 내 목숨을 포기한 게 아니야. 그 반대다. 죠, 너라면 분명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거야"

사라는 그렇게 말하고 똑바로 나를 쳐다봤다.

"집에선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미안해. 난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부탁한다!"

사람은 위험에 빠져야 진짜 그 사람이 보인다.

사라는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냉정을 되찾아, 사람을 믿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면, 그런 거면, 그런 사라의 친구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알겠어"

사라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사라 너도 구할 거야! 반드시!"

온몸을 묶고 있는 끈을 풀어낼 장치는 침대 옆에 달려있다.

나는 열쇠를 써서 그걸 풀어냈다.

그러자 사라 쪽 장치에서 덜컥하고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살펴보니 똑같은 열쇠가 안 들어가도록 열쇠 구멍의 모양이 변해있었다.

시험 삼아 넣어보려고 했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열쇠는 너무 커서 어떻게 해도 들어가질 않았다.

역시…… 정말로 한 쪽 밖에 살 수 없는 건가.

숨이 거칠어진다. 아니, 안돼. 포기하지 마. 생각해. 생각하는 거야.

"죠, 지금 내 쪽 장치는 어떻게 됐어?"

"열쇠 구멍이 작아졌어. 이 열쇠로는 이젠… 못 열게 되어있는 것 같아"

"그래, 그러면 작은 열쇠를 하나 더 찾으면 살 수 있는 거겠네"

사라의 말에 용기를 얻어 침대 밑이나 매트리스 사이를 찾아본다.

하지만 어딜 찾아봐도 다른 열쇠 같은 건 없었다.

그 사이에 5분이라는 타이머는 계속 흐르고 있었다.

대체 왜 시간이라는 건 항상 똑같이 흘러가는 걸까. 멈출 수는 없는 건가.

남은 시간, 2분 30초. 아무래도 열쇠는 정말로 하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열쇠는 너무 커서 남은 열쇠 구멍에는 들어가질 않아.

거기까지 정리하고 문득 깨닫는다.

왜 열쇠를 한 번 쓰면 다른 쪽은 작아지게 만든 거지?

작아지게 만들 이유가 있는 건가?

못 쓰게 만들 거면 아예 열쇠 구멍을 없애버리면 되는 얘기잖아?

있지도 않은 다른 열쇠를 찾게 만들려는 함정인가. 아니면...

나는 손에 쥔 낡은 열쇠에 시선을 둔다.

열쇠는… 하나. 이 상황에서 진짜 하나밖에 없어.

하지만 이 큰 열쇠를…… 열쇠구멍에 맞게 작게 만들 수 있으면?

혹시 또 다른 열쇠라는 거, 이 안에 있는 거 아니야!?

어차피 이젠 못 쓰는 거다. 그러면 부숴도 문제될 건 없어.

나는 쭈그려 앉아서 반대쪽 손에 열쇠를 쥐고 바닥에 힘껏 내려쳤다.

"죠? 지금 대체 뭘?"

"열쇠는 한 개밖에 없어. 그래도 이 열쇠 안에 다른 열쇠가 있을 가능성은 있을 거야!"

시간은 좀 걸렸지만 어떻게든 열쇠를 깨뜨렸다.

그냥 깨진 것뿐만은 아니었다. 안에는 작은 열쇠가 들어있었다.

"빙고!"

남은 시간을 확인하니 30초 밖에 없었다.

무작정 열쇠를 사라 쪽 장치에 꽂아 넣으려고 했지만 손이 떨려서 잘 안된다.

진정해, 진정하자, 진정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어떻게든 성공해서 열쇠를 돌렸다.

가까이서 구속구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라를 거들어서 서둘러 침대에서 내렸다.

직후, 스마트폰의 타이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울리기 시작했다.

침대가 기계의 엄청난 힘으로 반으로 접혔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안 늦었어, 어떻게든 구해냈다.

하지만 열쇠가 하나 더 있었다는 걸 눈치 못했다면…… 죽었을지도 몰랐을 거야.

사라는 아무 말 없이 고문 기구같이 생긴 침대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로 할 말을 잃고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웃어 보였다.

"어떻게든, 신뢰에 답해줬네"

그렇게 내가 내민 손을 사라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잡았다.

"지금 그렇게 잘난 척할 때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사라와 손을 잡으니 내 손도 떨리는 걸 알 수 있었다.

.

.

.

조금 쉬면서 냉정을 되찾은 후, 사라와 같이 방을 나왔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통로가 좌우로 이어져 있었다.

방문이 안 잠겨 있었다는 게 좀 이상했다.

또 의도한 건지 타이밍 좋게 내 폰도 배터리가 다 돼서 꺼져버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앞을 비출 게 없어졌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사라를 뒤에 둔 채 벽에 손을 대고 신중하게 걸어간다.

대체 여긴 어디지? 우리는 왜 유괴된 거지?

"죠, 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몸이 붕 떠오른다.

발이 닿아있어야 할 바닥이 없어져있었다.

설마 이건…… 하, 함, 정?

거기서 다시 내 의식은 끊어졌다.

 

 

 

002. 사라 시점

키미가시네ー다수결 데스게임ー side 죠 원작・감수・일러스트 난키다이 저자 데시가하라 아네모 출판사 엔터브레인 다른 사람한테서 배운건 아니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결심했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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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키미가시네 소설 'side 죠'의 열람/구매에 관해

안녕하세요, 니한입니다. 1장을 죠의 시점으로 볼 수 있는 소설 '키미가시네~다수결 데스게임~ side 죠'의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저작권도 있고 저도 책을 구매해서 읽고 번역하는 거여서 챕터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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