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side 죠』(完)

002. 사라 시점

ーNIHANー 2022. 1. 22. 11:16

키미가시네ー다수결 데스게임ー side 죠

원작・감수・일러스트 난키다이

저자 데시가와라 아네모

출판사 카도카와

 

번역:NIHAN


다른 사람한테서 배운 건 아니었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결심했던 게 있었다.

내가 상처받을 만한 행동은 남한테도 절대 안 하기로.

그것과 동시에 결심했던 게 하나 더 있었다.

내가 받아서 기뻤던 상냥함은 잊지 말고 기억해두기로.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나도 그렇게 베풀자고.

그 마음은 고등학교 1학년이 되고 죠를 만나고 나서부터 더 강해졌다.

언뜻 보면 죠는 천하태평에 아무 생각도 안 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알아채고 배려하는 재주가 뛰어난 녀석이다.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는 것을 금방 눈치채고 슬며시 내밀어온다.

생각해보면 그 이상한 일에 휘말리기 직전에도 그랬다.

내가 스토커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걱정해서인지, 그날 밤 죠는 학교까지 마중나와서 집까지 데려다줬었다.

"무서워… 무서워, 죠. 나 이러다 언젠가 살해당하는 거 아니야…?"

갑자기 나타난 스토커를 피해 어떻게 잘 도망쳤지만, 내가 그렇게 나약한 말을 내뱉을 때도 말해줬었다.

단순히 나를 안심시키고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런 짓 하게 둘까 보냐. 언제든 날 부르라고!"

죠는 내가 그 말에 얼마나 구원받았었는지 모를 거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던 나에게 손을 내밀어줬어.

그런 죠는 내 소개로 지금은 다른 반에 있는 료코랑 사귀고 있다.

둘은 사리사욕이 없는 점이 똑 닮아있어서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나는 그런 둘이 정말로 소중하다. 물론 료코를 방해할 생각은 추호도 없고.

그래도 괴로울 때는 죠한테 의지해도 될까.

걔가 말했던 것처럼, 그 이름을 불러도…

"죠……."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를 듣고 눈이 뜨였다.

어라? 지금 나… 뭐라고 했었지…? 아니… 애초에 왜 자고 있던 거야?

의식이 돌아오면서 동시에 지금까지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맞아. 우리 유괴당해서 방에서 탈출한 다음에 구멍으로 떨어졌었어.

"아아, 이제야 눈 떴네."

처음 듣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좁은 방이 아닌 어딘가 넓은 공간이었다.

몸도 안 묶여있다. 그리고 눈앞에는 처음 보는【금발머리 남자】가 있었다.

나는 순간 벌떡 일어나 그 남자와 거리를 뒀다.

누구지……?

키가 크고, 격투기라도 할 것 같은 탄탄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눈 밑에 진한 다크써클이 인상적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얼빠져 보이는 남자였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 되려나.

패션인 건지 좀 특이한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내가 경계하는 게 이상한지 그【금발머리 남자】는 푸훗하고 웃었다.

"여긴……."

"글쎄, 나도 잡혀 왔거든."

"네? 당신도?"

우리는 천장이 높고 넓은 플로어 같은 곳에 있었다.

다친 곳이 없는 걸로 봐서 저 천장에서 바로 여기로 떨어진 건 아닌 것 같은데….

천장을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플로어로 옮기니 놀라운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에 있는 건 나랑 그【금발머리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사람 몇 명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너네들 누구고 여긴 어딘데!"

"우리도 몰러! 진정하셔!"

밴드맨인 것 같은【메이크업을 한 여자】가 소리치고 그걸 【거한】이 받아치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여자】도 있었고, 침착해 보이는【앞치마 차림의 남자】도 있었다.

"이, 이 상황을 설명해주실 수 있는 분은 없는 건가요!?"

"이것 참, 뭐가 어떻게 된건지… 곤란하네요."

대부분 당황스러워하고 있었고, 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설마 다들 납치되서 여기에 끌려온 건가.

냉정을 되찾으려고 스스로한테 말을 걸어가면서 주변을 살펴봤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아이】말고도【비니를 쓴 남자】도 있었다.

조금 수상해 보이는【정장을 입은 남자】도 있었다.

【겁먹은 여자아이】는 구석에서 웅크리고 벌벌 떨고 있다.

생각보다 사람은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열 명인가.

아니, 그게 다가 아니야. 죠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살피고 있다.

"죠!"

잔뜩 긴장되어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풀린다.

말을 걸면서 다가가니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죠가 슬며시 웃어 보였다.

"사라……."

"왜 그래? 그렇게 목소리 죽이고, 어디 아파?"

"아니, 그건 아닌데. 그,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어."

우리가 그렇게 얘기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다가왔다.

눈 밑 다크써클이 뭔가 기분 나쁜【금발머리 남자】였다.

"헤에… 그렇구나. 죠랑 사라인가. 둘은 친구니?"

거기서 나는 깨달았다.

얼빠져 보이는 분위기와는 반대로 【금발머리 남자】는 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 위용에 넘어가 있으니 남자는 입꼬리만 올려서 웃는다.

"고마워, 거기 있는 친구… 죠였나? 좀처럼 입을 안 열어서 말이지. 이름도 안 알려줬거든."

그렇게 말하며【금발머리 남자】가 시선을 보내자 죠는 눈을 피했다.

사람을 의심해본 적도 없는 죠가 경계하고 있다. 나는 그 사실에 놀랐다.

【금발머리 남자】는 그런 죠를 보면서 미소 짓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좋아, 다들 내 얘길 들어줘. 아마 우리는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여기는 대체 어디인지, 왜 내가 여기에 끌려온 건지. 알고 있는 건 내가 누구인지 뿐일 거야."

막힘없이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평소에도 사람을 모으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냥, 이 이상한 상황에 너무 태연해 보이는 점이 신경 쓰였다.

"무,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건가요?"

경계하는 건지【작업복 차림의 여자】가 물어온다.

"내 말은, 자기소개를 하자는 거지. 서로 간의 불신은 조금 털어내자고."

그 말에 웅크리고 있는【겁먹은 여자아이】를 제외한 모두는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봤다.

거기서 우리들은 서로의 이름과 직업을 밝히기로 했다.

 

【메이크업을 한 여자】이름:야부사메 레코 / 직업:싱어송라이터

【거한】이름:버거버그 Q타로 / 직업:2군 야구선수

【정장을 입은 남자】이름:미시마 카즈미 / 직업:고등학교 교사

【작업복 차림의 여자】이름:에고코로 나오 / 직업:미대생

【앞치마 차림의 남자】이름:사토 카이 / 직업:주부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아이】이름:이부시 긴 / 직업:초등학생(6학년)

【비니를 쓴 남자】이름:히요리 소우 / 직업:프리터

 

이런 말 하는 건 뭐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많았다.

겉모습으로 봐서도 다들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특히 나는【정장을 입은 남자】인 미시마 선생님에게 엄청난 경계심을 가져버렸다.

안경 쓰고 딱 봐도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아 보이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고등학교 교사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참고로 국어와 미술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미시마 선생님은 그렇게 설명하면서【금발머리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고등학교 선생님인가. 그렇게는 안 보이지만…."

"네에, 유감스럽게도 그런 말은 자주 듣습니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어딜 봐도 수상해."

【금발머리 남자】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진다. 그러자 거기에 끼어드는 여자가 있었다.

"정말 너무해요! 선생님께 사과하세요!"

작업복을 입은 미대생 나오 씨였다.

"놀랐네, 무슨 일이야 아가씨?"

"실례했습니다, 사실 이 아이는 제가 가르쳤던 제자입니다. 부디 용서를."

"엄청 좋은 선생님이시거든요!?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아 주세요!"

……판단을 망설이고는 있었지만 확실히 겉모습만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 부분은 나도 속으로 뉘우쳤다.

겉모습은 어딜 봐도 수상해 보였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 누구보다 어른이었고 말투도 상냥했다.

미시마 선생님은 조금 슬퍼 보이는 표정으로 "역시 수상해 보이는 걸까요, 충격입니다." 라고 말해온다.

본인은 진지하게 말한 것이겠지만, 그 모습이랑 매치가 안 되서 피식하고 웃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주변의 분위기는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저도 방금 주부라고 소개를 드렸습니다만, 특기인 요리는 에그 베네딕트입니다."

언뜻 보면 여성이라 오해할 정도로 여성스러운 모습을 한 카이 씨가 무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니 야구선수라고 했던 Q타로 씨가 대화를 이어갔다.

"셰프 아인겨? 까다롭구만. 근디 폰 같은 것도 다 뺏긴 모냥인디 거 후라이팬이랑 국자는 뭐시여?"

"조금 전에 있었던 방에 있길래 호신용으로 가져왔습니다. 하나 쓰시겠습니까?"

"……국자가 어데 쓸데가 있남, 필요없지라."

방금 전 있었던 방이라는 건 최초의 시련을 받았던 방이라는 건가.

어쩌면 우리는 똑같이 그 최초의 시련이란 걸 받았던 걸지도 몰라.

그 증거로 미시마 선생님과 그 제자인 나오 씨도 나랑 죠가 받았던 것과 똑같은 시련을 겪었다는 얘길 들었으니까.

시련 말고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또 하나 있었다.

모두가 어느샌가 목걸이를 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해봐도 빠지지 않는 모양이라 찜찜하지만 그 이상한 목걸이는 계속 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의문점들을 뒤로하고 나랑 죠도 뒤이어 자기소개를 한다.

언제나처럼 밝고 쾌활하게 말해올 것이라 생각했던 죠는, 의외로 여전히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 죠가【금발머리 남자】에게 물었다.

"저기…… 아직 자기소개 못 들었는데요. 부탁드려도 됩니까?"

"아아, 그러고 보니 나 아직 자기소개 안 했었지. 그래, 난 시노기 케이지"

거기서【금발머리 남자】의 신원이 밝혀진다.

"경찰관이야."

 

【금발머리 남자】 이름:시노기 케이지 / 직업:경찰

 

모두 놀란 표정을 짓는다. 특히 죠는 더 그랬다.

"어…… 경찰? 진짜… 그러면 처음부터 말해달라고요! 경계해서 손해 봤네."

죠의 말에 경찰관이라고 하는 케이지 씨가 답한다.

"그렇게까지 경계하는 이유는?"

"아니, 그러니까… 피해자인 척하면서 섞여 들어온 범인 쪽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어딘가 긴장한 표정으로 죠는 그렇게 말하고 케이지 씨를 슬쩍 쳐다봤다.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지금까지 죠가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이유를.

직후, 플로어가 떠나갈 정도로 큰 웃음소리가 울린다. 케이지 씨가 웃고 있었다.

"설마 여차하면 여친 지키려고 그런 거야? 너 진짜 재밌다."

"아니… 그런 거 아닌데요. 애초에 사라는 친구고."

죠가 멋쩍어하는 얼굴로 시선을 피하니 미시마 선생님이 웃었다.

"이야 청춘이군요, 크크크."

"아저씨 그렇게 웃지 마라냥! 기분 나빠멍."

"이런, 실례했습니다."

초등학생인 긴은 말끝에 멍냥을 붙이면서 미시마 선생님에게 한마디 했다.

이 자리의 11명 중에는 이렇게 어린아이도 있었다.

……정말로 이 안에 우리를 납치해 온 범인 일행이 있는 걸까.

 

문득 이 무리 안에 들어오지 않고 혼자 벌벌 떨고 있는【겁먹은 여자아이】쪽으로 시선을 뒀다.

그 아이는 어딜 봐도 피해자였다.

신경 쓰여서 가까이 다가가니 내가 있는 걸 눈치채곤 흠칫하고 몸을 떨었다.

"괜찮아?"

"으, 아, 아아, 으으"

그 아이가 떨면서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꽤나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내버려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 지금 이 타이밍을 놓치면 이 아이는 혼자가 돼버릴 수도 있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대해줬는지 떠올렸다.

고민 끝에 나는 아이의 곁에 앉기로 했다.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말 같은 건 안 해도 돼.

그냥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주기만 해도….

"갑자기 말 걸어서 미안해."

"아, 아아 아뇨. 저, 저야, 말로. 자, 잘, 말 못 해서"

무슨 일이 있어서 그렇게까지 떨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냥한 아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스스로가 힘들 때조차 타인을 신경 쓰고 있으니.

조금 오지랖이 넓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난 아이의 등에 손을 올렸다.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

"에?"

"진정하고 나서 얘기해도 괜찮으니까, 모두한테 자기소개하자. 진정될 때까지 옆에 있어 줄게."

내가 웃으면서 쳐다보니【겁먹은 여자아이】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  미안. 혼자가 좋은 거니? 그러면"

"아, 아니, 에요. 저, 저는…… 그, 그게"

잠시동안 그 아이는 웅크린 채로 떨었다.

"죄송, 합니다. ……저, 저도, 자기소개할게요."

"괜찮겠어?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네, 네. 언니 덕분에, 조금, 진정 됐어요."

그리고서 나는【겁먹은 여자아이】와 함께 무리로 돌아갔다.

"저, 저는…… 키즈치 칸나입니다…. 중학교, 2학년이에요."

 

【겁먹은 여자아이】 이름:키즈치 칸나 / 직업:중학생(2학년)

 

모두가 칸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떨고 있었는지, 그게 신경 쓰였던 것도 있었겠지.

"저, 저…… 언니랑 같이,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데, 검은 차에서 사람들이 내려서, 같이 잡혀 와서"

나는 칸나가 하는 말에 두 가지 의문을 가졌다.

칸나랑 칸나의 언니가 누군가에게 갑자기 잡혀 왔다는 것. 그리고 지금 그 언니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건 즉….

나 말고도 그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있겠지.

스스로를 주부라고 소개한 카이 씨가 침묵을 깨고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언니와 함께였다는 건가요. 지금 이 자리엔 보이지 않습니다만…."

거기서 칸나는 흠칫한다.

주저하면서 입을 열려고 하다가, 다시 꾹 다물었다.

눈에는 다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어, 언니는, 언니가…… 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

칸나는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머리가 감정을 처리해내지 못해 말로 이룰 수 없는 고통을 토해내는 것처럼.

"주, 죽어버렸어! 아아, 왜, 쿠기에 언니가! 나, 나 때문에! 으, 으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죽었다고?

그러니까 그 말은, 최초의 시련에서?

목이 찢어지게 울부짖은 칸나는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003. 죠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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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키미가시네 소설 'side 죠'의 열람/구매에 관해

안녕하세요, 니한입니다. 1장을 죠의 시점으로 볼 수 있는 소설 '키미가시네~다수결 데스게임~ side 죠'의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저작권도 있고 저도 책을 구매해서 읽고 번역하는 거여서 챕터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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